점당 100원이면 괜찮을까?
그런데 돈이 오가는 순간부터 도박일까요? 그리고 왜 잃으면 자꾸 본전을 찾고 싶어질까요?
명절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자연스럽게 고스톱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밥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다 보면 누군가 화투를 꺼냅니다.
처음에는 정말 소소합니다.
점당 100원.
몇백 원 따고 잃으면서 웃고, 운 좋게 고도리라도 하면 괜히 기분도 좋아집니다. 돈을 벌려고 한다기보다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는 놀이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이것도 도박이라고 봐야 할까요?
그리고 또 하나 재미있는 게 있습니다.
처음에는 몇백 원 잃어도 웃고 넘겼는데, 조금씩 잃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 마음이 달라집니다.
“딱 한 판만 더 해서 본전 찾고 그만하자.”
생각해보면 명절 고스톱에는 꽤 재미있는 두 가지 돈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가족끼리 즐기는 놀이이고 어디서부터 도박이 되는지, 그리고 왜 우리는 이미 잃은 돈을 그냥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어려운지입니다.
가족끼리 돈 걸고 고스톱을 치면 무조건 도박일까?
법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답이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현행 형법 제246조는 도박을 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뒤에 중요한 예외가 하나 붙어 있습니다.
다만, ‘일시오락 정도에 불과한 경우’에는 예외로 합니다.
그러니까 돈이 조금이라도 오갔다고 해서 모든 화투놀이가 곧바로 처벌 대상이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그렇다면 얼마까지가 ‘일시오락’일까요?
“점당 100원이면 괜찮다”는 기준이 있는 건 아닙니다
이 부분은 저도 찾아보기 전에는 금액을 기준으로 어느 정도 선이 정해져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법에는 “점당 얼마까지 괜찮다”거나 “판돈 얼마 이하는 합법”이라는 식의 고정된 금액 기준이 적혀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판례를 보면 당시의 판돈뿐 아니라 고스톱을 하게 된 경위와 시간, 장소, 참가한 사람들의 직업과 재산·수입 정도, 돈의 사용처 등을 함께 살펴 판단해왔습니다.
하지만 법원이 본 것은 ‘100원’이라는 숫자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참가자들의 직업과 재산관계, 장소에 가게 된 경위, 고스톱을 하게 된 동기와 시간, 규모 등을 함께 살폈습니다.
다른 판례에서도 비슷합니다. 친목회 회원을 기다리면서 약 1시간 10분 동안 고스톱을 하고, 각자가 가지고 있던 판돈이 5천원에서 1만5천원 정도였던 사안에 대해 법원은 경위와 시간, 장소, 판돈, 직업과 수입, 딴 돈의 용도 등을 종합해 일시오락으로 판단했습니다.
처음에는 돈보다 ‘재미’가 더 큽니다
다시 명절 거실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가족끼리 둘러앉아 점당 100원으로 시작하면 처음에는 돈 자체가 목적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누가 피박을 썼다며 웃고, 누군가 연속으로 이기면 괜히 놀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두 판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갑니다.
그런데 판돈이 조금씩 쌓이고 내가 계속 잃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없던 생각이 들어옵니다.
↓
몇 판을 연달아 졌습니다.
↓
생각보다 돈을 많이 잃었습니다.
↓
“여기서 그만두면 그냥 잃은 거잖아.”
↓
“한 판만 더 하면 본전 찾을 수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이 지점이 더 흥미로웠습니다.
고스톱의 규칙이 갑자기 달라진 것도 아니고 다음 판에 내가 이길 확률이 ‘내가 지금까지 잃었다’는 이유만으로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미 잃은 돈이 생기면 다음 선택을 보는 마음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본전만 찾고 그만할게”에는 어떤 심리가 있을까?
경제학과 행동심리에서는 이미 투입해 되돌릴 수 없는 돈이나 시간, 노력을 매몰비용이라고 부릅니다.
이미 발생한 비용이라면 원칙적으로 앞으로 무엇을 할지를 결정할 때는 앞으로 얻을 것과 잃을 것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실제 사람의 판단은 그렇게 깔끔하지 않습니다.
행동의사결정 연구에서는 돈이나 시간, 노력을 이미 투입한 뒤 그 선택을 계속하려는 경향을 매몰비용 효과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고스톱에서 “이미 2만원이나 잃었으니 한 판만 더”라는 생각은 매몰비용을 떠올리게 하는 아주 일상적인 장면입니다.
여기에 손실을 확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겹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선택은 같은 결과라도 이익과 손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다음 판의 결과를 바꾸지 않습니다.
이 문장을 고스톱이 아니라 투자에 가져다 놓으면 조금 낯익게 느껴집니다.
“이 주식에서 이미 많이 잃었으니 본전까지만 기다려야지.”
물론 고스톱과 주식투자는 성격이 전혀 다르고 둘을 같은 행위로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과거에 얼마를 잃었는지가 앞으로의 판단을 붙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돈을 대하는 우리의 심리를 돌아볼 만합니다.
그래서 명절 고스톱이 재미있는 생활경제 이야기가 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궁금증이었습니다.
가족끼리 점당 100원으로 치는 고스톱도 도박일까?
그런데 찾아보다 보니 금액 하나만으로 놀이와 도박의 경계를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고스톱판에 앉아 있는 사람의 마음도 비슷했습니다.
처음에는 몇백 원에 웃던 사람이 돈을 잃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 재미보다 본전을 생각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때가 스스로 한 번 물어볼 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잃은 돈 때문에 일어나지 못하는 걸까?”
답이 두 번째에 가까워졌다면 처음 화투를 꺼냈을 때와는 이미 목적이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족끼리니까”, “점당 100원이니까” 무조건 괜찮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법도 단순히 금액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었고, 사람의 마음도 판돈 숫자 하나만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몇백 원에 웃으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본전만 찾고 그만하자”는 생각 때문에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다면, 돈보다 먼저 달라진 것은 어쩌면 내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과거 판례에서 점당 100원 고스톱을 일시오락으로 판단한 사례가 있으나, 이는 점당 100원이 합법 기준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실제 판단은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매몰비용 부분은 Arkes & Blumer(1985)의 「The Psychology of Sunk Cost」 등 행동의사결정 연구의 개념을 일상적인 사례에 연결해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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